Carl Rogers는 1902년 미국 시카고 근교의 오크파크에서 기독교 가정의 5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미국의 중서부 출신이었으며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신봉했다. Rogers의 부모는 가족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로서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하며 술 마시고 춤추고 카드놀이를 하는 등의 어떤 사교적 생활도 허용하지 않았다. 자녀들에 대하여 많은 애정을 기울였으나 기독교 신앙과 근면성을 강조하며 철저한 통제를 가했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Rogers는 어린 시절에 건강이 좋지 않은 매우 예민한 아이였으며 가족으로부터 놀림을 받곤 했다. 가족을 벗어나 친구를 사귈 기회가 거의 없었으며 자기만의 공상세계로 빠져들거나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위안을 찾는 매우 외로운 아이였다고 Rogers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Rogers는 12세가 되던 해에 가족과 함께 시카고 서부지역에 있는 농장으로 이주하여 청소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Rogers는 청소년기를 고독하게 보냈으며 고등학교를 세 번이나 전학하였고 학교가 멀었기 때문에 과외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농업에 관한 책을 읽으며 보냈다. 이때부터 농업에 흥미를 느껴 위스콘신 대학교에 입학하여 농업을 전공했다. 그의 부모가 농장으로 이주한 주된 이유는 자녀들에게 정직한 노동의 가치와 기독교적 신앙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도시생활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난 농촌생활이 더 나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2학년 때에는 기독교 청년협의회에 참석한 후 목사가 되기로 목표를 정하고 전공분야를 역사학으로 바꾸었다.
그다음 해인 1922년은 Rogers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던 대학 동창이자 연인인 Hellen Elliot에게 자신의 경험을 장문의 편지로 전했으며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 갔다. Rogers는 그 북경에서 개최된 국제 기독학생 연합회에 12명의 미국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다. 그곳에서 머무는 6개월 동안 그는 자신과 완전히 다른 종교와 문화적 배경을 지닌 많은 젊은이들과 교류하면서 다양한 체험과 자유로운 사색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로 하여금 부모의 종교적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관을 보다 자유롭게 다시 정립할 수 있는 심리적인 독립을 이루게 하였다.
1924년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학사학위를 받고 졸업한 그는 Hellen과 결혼하려 했으나 부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부모는 두 사람 모두 전문직을 가질 때까지 결혼을 연기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반대를 무릅쓰고 Hellen과 결혼한 Rogers는 목사가 되기 위해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에 진학하였다. 이 당시 작은 교회에서 설교할 기회를 갖게 된 로저스는 자기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을 꺼리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 무엇을 믿어라"고 말하기를 싫어했던 자신의 특성이 목사라는 직업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강요적인 신앙에 회의를 느끼며 혼란스러워하던 Rogers는 길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던 컬럼비아 사범대학에서 임상심리학 과목을 수강하게 되면서 커다란 감명을 받아 전공을 신학에서 심리학으로 바꾸게 되었다. Rogers는 아동과 청소년의 성격적응을 측정하는 검사를 개발하는 연구로 1931년 컬럼비아 사범대학에서 임상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Rogers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로체스터의 아동보호상담소에서 12년 동안 임상심리학자로서 근무했다. 인간중심치료는 Rogers 자신의 발달과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과 통찰력이 깊어지면서 이론적 체계가 더욱 심화되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진단과 치료의 목적으로 의뢰된 부적응 아동을 위해 헌신하였다. 대다수의 아동들이 심하게 상처받은 상태였으며 열악한 환경적 여건으로 인해서 정교한 치료법을 적용할 기회조차 없었다. Rogers는 대학에서 배운 고급 치료법들이 긴박한 현실에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좀 더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접근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 당시 Rogers는 한 비행청소년의 어머니와 면담하면서 그녀가 아들에게 하는 행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친절하게 해석해 주지만 그녀는 이러한 해석을 거부하는 대신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Rogers 치료이론은 하위계층 아동들과 그들의 어머니와의 상담에서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문제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치료자가 아니라 내담자라는 사실과 더불어 치료의 진행방향을 내담자에게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Rogers는 인간의 고통을 치료하는 데 있어 기법적인 기술보다 치료자의 인간적 면모가 중요함을 강조한 Otto Rank로부터 영감과 확신을 얻게 되었다. 1942년에 출간한 저서 『상담과 심리치료(Counseling and Psychotherapy)』에서 Rogers는 상담과정에 대한 그의 입장과 비지시적 치료방식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제시하였다.
1945년에 Rogers는 상담센터를 설립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시카고 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훗날 시카고 대학교에서 심리학 교수이자 상담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던 12년의 시간을 가장 창의적인 시기로 회고했다. 1951년에 『내담자 중심치료(Client-CenteredTherapy)』를 출판하면서 Rogers는 많은 열광적 독자들을 확보하였으며 미국 내외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56년에 Rogers는 치료과정에 관해 수많은 연구들을 수행한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심리학회로부터 '학술공로상(Distinguished Scientific Contribution Award)'을 받았다. 그는 이 상의 수상을 자신이 성취한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Rogers는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관심과 혁신적인 자세를 지닌 동료 및 대학생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치료방법을 훈련시키는 한편,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며 치료효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다.
Rogers는 1957년에 위스콘신 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1961년에 출간한 저서 『진정한 사람되기(On Becoming a Person)』는 Rogers의 삶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으며 인간중심치료단계의 시발점이 되었다.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교육, 철학, 예술, 과학 등의 다양한 분야로부터 놀라운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Rogers를 일거에 유명인사로 만들어 명성과 영향력을 얻게 해 주었다. 이 책에서 Rogers는 인간중심치료의 원리를 강력하고 감동적인 언어로 제시하였으며 심리학의 영역을 넘어서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1968년에 Rogers는 인간연구센터(Center for Studies of the Person)를 동료들과 설립하여 사망할 때까지 이 센터의 전임연구원(Resident Fellow: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직함)으로 지냈다. Rogers는 1970년 후반에 집단워크숍을 열어 자신의 치료방법을 대단위 집단에 적용하면서 처음으로 '인간중심(personcentered)'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이후로 자신의 치료방법을 인간중심치료라고 지칭하였다. 그는 각 분야에서 모여든 40여 명의 구성원들과 지지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누며 생산적이고 열정적인 노년기를 보냈다. Rogers는 말년에 세계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흥미를 느꼈다. 인간중심적접근이 결혼제도, 교육, 기업경영, 국가운영에 걸친 광범위한 영역에 적용되어 미칠 수 있는 사회적 함의를 제시하였다. 1980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존재의 방식(A Way of Being)』은 미래의 세계에 대한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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